해질 무렵 디와이 해변에 갔다가 소나기도 안내렸는데 작은 무지개가 떠
신기하여 찍어보았다.
램지 부인은 미스터 램지 사이에 팔남매를 두고 있다. 쉬기위해 런던을 떠나
해변가의 별장에 와서 생활하고 있었다. 막내 아들 제임스에게 책을 읽어주며
내일은 아들과 함께 등대에 가보자고 이야기하나 남편 램지는 내일 날씨가
나쁠 것이니 결코 등대로 가는 배를 띄울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여덟의 아이들과 같이 와서 머무는 몇 명의 친구들과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않는 하녀들과 자기처럼 나이들어 낡은 집과 온실의 보수를 위하여
큰 돈이 필요한 등등 마음의 부담들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지혜롭고 재치있게 모든 일을 해나가는 램지 부인은 눈에 띄일 정도의 미모의
소유자로서 뱅크스씨는 그녀를 사모한다. 램지는 철학교수로서 아내와 여덟
아이들에게 독선적이고 자기 중심적이고 때론 허영심도 강한 것처럼 보였다.
램지 부인은 결혼은 신성한 것이고 결혼 생활을 하지않는 것은 인생의 어떤
결함으로 주위의 미혼 남녀들을 부추여 결혼을 하도록 수시로 주장하였다.
모든 하루 일과가 끝나고 그 하루의 일들이 자석처럼 여전히 자기에게
달려붙는 듯이 천천히 보낸 하루를 음미하며 침실로 올라가며 소파나 흔들의자에서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듯하여 세월이 얼마 간 흘러 자신의 딸들이
어른이 된 후 자기처럼 이 계단을 오르며 어머니 램지부인을 보는 모습이 떠오르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합일을 보면서 잠자리에 들며 하루를 마감하고는 했다.
집과 아이들과 친구들을 포함한 모든 일들이 모든 것을 투시하는 맑은 눈을 가진
부인을 중심으로 온화하고 평화스럽게 유지되던 어느 날, 갑자기 부인이 죽었다.
그후 별장은 폐쇄되어 사람들이 떠나간 후, 아무도 살지않는, 바람만 심란히
불어오는 별장은 스스로 낡아가며 모든 문들이 뒤틀리어 바람에 스스로
열고 닫기며 몸에는 곰팡이들이 자라며 사람의 손길이나 훈김이 없는 폐가로
퇴색하며 썩어가고 있었다. 부엌 타일 바닥에 자라나는 엉겅퀴와 거실 해진
소파에 집을 짓는 새들. 그 몇 년이 지나며 어리던 막내가 소년이 되는, 그동안
전쟁이 일어나고 전쟁에 참전하였던 앤드류가 죽고 딸은 결혼 후 첫 아이를
해산하다가 죽었다.
세 식구를 잃은 램지 가족과 그 친구들은 어느 날 별장으로 되돌아 왔다.
아무리 노력해도 인생은 힘들고 고난의 연속인, 뚱뚱하고 관절염으로 한숨짓는
관리인 노파는 아들과 하녀와 함께 유령들이 사는 듯한 별장을 털고 닦아내며
온 집안을 미친듯이 청소하며 옛주인들의 모습과 목소리를 듣는듯 과거를 회상한다.
구심점이 되던 램지 부인을 잃은 가족들의 별장 생활은 시작되었다.
램지는 깡마른 노처녀 릴리에게 자신의 처지를 동정 받으려고 시도하나
육신과 감정이 함께 메마르기만 한 릴리는 자신의 그림 그리기가 방해 받는
것에 신경을 쓰고 그가 아내, 램지 부인으로부터 끊임 없이 무상으로 받았던
동정과 애정을 주기를 무서워하며 피한다. 노인 카오슬로는 말없이 책읽기와
시쓰기에 여념이 없고 더이상 어린이들이 아닌 자녀들은 이제서야 등대에
가기를 강요하는 아버지 램지를 미워한다.
그들이 등대를 향하여 출발하여 배를 띄웠다. 릴리는 램지부인이 살아있을 때
시작했던, 미완성의 그림을 그리려고 이젤을 세웠다. 집과 뜰과 바다의 넣은
구도를 잡다가 그녀는 뜰에서 램지부인을 보는듯 했다.
평소에 램지 부인은 인생이 꼼짝도 않고 서있다고 말하곤 했다.
변화하는 사물의 한 순간의 구도를 잡아 화선지에 잡아넣으려는 릴리는 그
인생이 꼼짝도 않고 서있다는 확신을 위해 램지부인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했다.
그녀는 집안이나 뜰 어디를 보아도 램지 부인을 느끼고 보므로 울고 싶다.
사소한 기적의 연속같은 모든 일상 생활의 한 가운데서 모두를 위해, 전쟁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던 장군처럼, 씩씩히 진두지휘하던 아름다운 램지 부인은 이제는
부인이 그리워 폭풍우 치는듯한 릴리의 마음 한가운데 조용히 앉아서 휴식하고 있다.
그 휴식에 과연 인생의 의미가 있는 것일까.
회색옷을 입고 쇼울을 두르고 막내 아들에게 자주 책을 읽어주던 아름다웠던
여인에 관해, 인생에 관해, 죽음에 관해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은
릴리의 가슴을 공허하고 허무하게 에이게하여 화선지에 잡은 그림의 구도가
공허의 덩어리가 되어 그녀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설명하라고 누구엔가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종국에는 그도 가고 그녀도 가고 나도 갈 것이 아닌가.
하지만 화선지의 이 구도 만은 남아서 사물은 손을 뻗어 우리를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세상이 운행하는 이치는 도무지 알수도 없고 안내자나 피신처도
없고 놀라운 일, 전혀 예기치 않은 일, 허공 속으로 몸을 던지는 일만이
인생일까. 릴리는 바다 위에 갈색점으로 보이는 램지와 제임스와 캠이 탄,
등대로 향하는 배를 바라보며 그녀가 램지 부인과 그 가족들을 사랑하고 있고
램지와 그녀의 그림 안에서의 어떤 균형의 어그러짐이, 어떤 사물의 형체를
갖추기 이전의 본질을 그리는 것을 놓치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폭풍이 있는 날이면 배가 난파되어 사람들이 죽어가는그 바다를, 램지와
아이들은 무사히 건너고 그것을 확신하는 릴리는 이상적인 그림을 그렸다는
확신으로 마침내 그 그림을 완성하였다.
사물과 인생의 본질의 밑바닥까지아주 섬세하고 조용히 파헤쳐내려가는
필체가 놀랍다. 선병질 적으로 생긴 버지니아 울프의 신경쇠약증이 이런
섬세하고 수채화의 연작인 것처럼 느껴지는 작품을 쓰는 근간이 되지않았나
생각이 든다.
각자의 마음 속에는 도달하고 싶은 등대들이 있을 것이고 더러는 눈을
감을 때까지 근접도 못하고 한으로 남을 수도 있고 더러는 어느 정도까지
가다가 포기할 수도 있고 더러는 도착하여 환희를 누릴 수도 있겠다.
저만치 서있던 등대는 가까이 가려고 노력했지만 신기루처럼 더 멀리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빛을 비추어주면서 각자를
밝고 아름다운 길로 인도해가는 등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설사 도달하지
못한다하여도 그 노력하는 과정과 가슴 어느 한 구석에 그 등대의 존재를
담고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함을 느낄 때가 있는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