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생각

바람부는 밤

another woman 2010. 8. 12. 00:31

 

 

 

 

깊은 밤입니다. 바람이 몹시 부는 깊은 밤입니다.

바람 때문에 잠은 먼 동네로 달아나버리고 정신은 거울처럼 맑아집니다.

나뭇잎들이 못견디게 흔들리는군요.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쏠리는

소리들이 마치 버뮤다 바다의 회오리처럼 눈으로 보입니다.

이 바람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몽골의 사막으로부터인지, 남극의 거대한

흰얼음 성들의 바다로부터일지, 하늘을 높이 휩쓸고다니며 지나가는

비행기를 일엽편주마냥 뒤흔들어 승객들이 비명을 지르게하며 먼 여행에

지쳐 이 작은 주택가 숲에서 잠시 쉬어보려고 불어오는 걸까요.

바람은 줄창 이리저리 불어대면서 함께 불면의 밤을 지새도록, 어디선가

누군가가 불면의 밤에 쫓기어 자꾸  헛기침을 하면서  잠들어보려고

마침내 전등을 끄고 누워 뒤척이는,  헛된 노력을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런 바람은 가끔씩 불어옵니다. 낮에는 따스한 겨울 탓인지 진홍색 매화들,

자색 목련들, 어느 가난한 골목 술집 앞에서 서성이는 아가씨의 입술 연지처럼

붉디붉은 동백들이 현란히 핀 것을 보았습니다. 모두들 푸르른 하늘을 향하여

두 팔을 벌리며 나를 좀 봐봐, 나를 좀 봐주세요 이렇게 고운 나를 본 적이 있나요

하고 소리없는 아우성들을 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이런 바람은 그 부드럽고 매끄럽고

고운 꽃잎들을 매정히 오무리게하고 속절없이 거리에 흩뿌려 날리게하겠지요.

어느 꽃이나 잎들도 그 바람들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바람은 꽃잎들을 거칠게

낙화시켰으나  그 하나하나가 얼마나 고왔는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꽃잎들은 자기의 모습이 너무 고와서 이렇게 낙하해야하는 자기의 운명이

너무 슬프지만 조용히 거리로 뜰로 살며시 내려앉아 마지막 자신의 고움을

빛내다가 말없이 시들고 쪼그라지며 말라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자신들을 환하게 비추며 아름답게 키워준 찬란한 햇살을

기억하며 어둠의 조문에도 조용히 순응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뒤척이는 동안 곧 새벽은 어스름히 동쪽으로부터 스며들겠지요.

그제서야 선잠을 좀 자다가 꿈을 꾸며 오래동안 잊고지냈던 누군가가 그

풋꿈에 나타나, 자면서도 지난지 오래된 어떤 기억과 조우하기도해요.

그러다 환한 햇살이 비치는 아침이 되면,  꿈인지 생신지 그 어떤 기억들이

함께 엉키어 침대가 깊은 물인양, 몸이 갈아앉는듯해 일어나지 못하고 자꾸

머뭇거리는데 뜰에 떨어진 한 연 분홍 꽃잎이 아쉽게 떠오릅니다.

꽃잎들은 조용히 분해되어 땅으로 스며들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늙거나

병들어서 저승의 문 앞에서, 혼수 상태로 눈을 감고 있는 사람들의 목숨은,

이 땅에서 아직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과 회한을 뒤로 한 채로,

시들어 연기처럼 사라지더라도 그 영혼은 창조주의 품 안에서

행복한 평강을 누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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