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인 에바는 베스트 셀러가 되는 여행기를 쓰는 여행가로 자유로롭게 살아오다, 스페인의
토마토 축제후 미국인인 사람 좋은 프랭클린과 결혼하고 이어 케빈을 출산하게 되었다.
늘 여행을 하며 자유로운 삶을 살던 그녀는 뱃 속에 열달을 지니고 고통 속에 출산하고
늘 보살펴야하는 아기의 존재에 낯이 설고 잘 돌보지못한다는 자책을 가지고 있으나
나름 열심히 아기를 길렀다. 그러나 아이는 엄마에게 적대적이고 반항하는 것이 나이보다
조숙하고 교활하기까지해 에바는 애를 먹는다. 아이는 자애로운 아빠에게는 착하게 구나
어린 여동생을 괴롭힌다. 그녀가 기르는 기니피그를 싱크대에 넣고 갈아버려 싱크대가
막히게하고 그녀의 한 쪽 눈을 실명시키고 등등 에바의 속 괴로움은 날로 극심해져간다.
프랭클린은 아이가 활쏘기에 취미를 갖자 성장할 수록 나이에 맞는 크기의 활을 선물한다.
그의 열여섯이 되는 생일에는 성인용 활을 받았다. 그는 자전거를 잠그는 자물쇠를 많이
사서 학교 체육관을 봉쇄하고 그 안의 학생들을 활로 쏘아 많은 수의 사상자를 낸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절망하며 집으로 돌아온 에바는 뜰에서 활을 맞고 사망한 프랭클린과
딸 실리아를 발견한다. 그이후 초라한 흰 오두막은 저주가 내린듯 새빨간 색으로 엉망으로
칠해져있는 집에서 살며 동네 사람들에게 얻어맞는등 온갖 수욕을 당하며 산다.
아들을 면회가서 왜 그랬냐고 묻자 아들은 지금은 모르겠다고 감정없이 대답하는데
그 아들을 간절히 포옹하는 에바의 얼굴이 눈가에 남는다.
어떤 사람은 에바가 엄마의 역활에 서툴러 아이가 그 때문에 소시오패스가 되어 그렇게까지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영화 속의 에바는 서툰 엄마 노릇이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한계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나씩 깨달아가며 어둡게 성장하는 아들을 보며
곤혹하며 최선을 다하려는 그 모습 하나만으로도 아이가 엄마의 사랑을 못받아 소시오 패스가
되었다는 설명은 무리가 있다. 태어나서 아이의 속에서 돌출되는 어떤 어두운 성향이 있다는 것을
보게된다. 열여섯이 되면서 자신을 끝까지 사랑한 아빠와 괴롭혀도 끝까지 오빠를 믿고 따른 실리아를
화살로 죽인다는 것은 악의 절정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아무 죄도 없는 학교의 그 학생들을
무차별로 살해한다는 것은 악의 기승 이외는 무엇으로도 설명이 안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 중의 하나가 어떤 생명은 출생부터 저주하에 태어나는 것이다.
가롯유다를 향해 예수님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소시오 패스란 것은 타인과의 감정 공감이 전연 막히고 오직 자신의 감정과 이기 만을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라한다. 우리 모두 타인들과 감정이나 사회적인 공감을 하더라도 강하고 약하게의
차이지, 누구나 소시오 패스의 경향을 조금씩 가지고 살아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캐빈은 그 자신이 악하다기보다 그의 영혼 속에 깃든 악한 그 무엇의 조종을 받았다.
그 자신이라면 에바에게 프랭클린에게 실리아에게 그렇게 할 수는 도저히 없을 것이다.
사람은 그릇이고 그 그릇에는 선한 영이던지 악한 영이든지 담긴다고 그 분은 말한다.
현대인들은 창조주를 부인하는 대세로 흘러간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설교를 한 목사들이 감옥행을 해야하는 현대의 북 유럽사회의 어떤 나라는
동물과의 수간을 법적으로 허용한 곳도 있다. 쇠사슬에 묶이어 고통에 찬 눈으로 엎드려있던
그 개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악이 기세등등해지는 세상에서 살고있는 세대에 캐빈에게 대하여
말하여야 된다는 영화는 이제라도 이런 영적인 문제에 대하여 인식해야한다는 의미가 된다.
자질이 아주 부족한 막되먹은 엄마가 효도 받기도하고 자식에게 극진해도 악한 대접을
받기도하는 그런 모습들이 만연한 까닭을 알수는 없지만,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깊은 곳에서
벌어지는 악하고 선한 영들의 갈등이 이 세상에 표면화되어 나타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상의 보편적인 악함이 보인다. 아들이 자라나는 동안에 보인 그런 조짐들의 정체가
뭔지도 어떻게 해야할지몰라 혼돈과 갈등과 자책 속에서 보낸 세월로도,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인생에 대해 벌을 선듯하였을터인데 그런 대량 살상의 파국까지 겪어낸 어미의 가슴이
다 찢어져 칼바람을 맞고있을 그 허공의 가슴에 대고 세상사람들이 너무 당연한듯이 부어대는
모욕과 비난과 한 인격이 파괴될수 있게, 어미라는 이유로 피흘리는 깊은 상처에 소금을
더많이 들이붓는 그 세상의 매질이 무섭다.
회사의 파티에서, 동네 부인들에게 온갖 모욕을 당한 에바가 아들에게 면회를 가서 묻는다.
왜 그랬느냐고. 그는 이제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이 알아서
저질렀다기보다 그 안에서 날뛰는 그 어떤 검은 세력의 조종에 그대로 했다고하면 납득이 된다.
초라하고 겁과 연민에 쪄든, 야윈 에바는 아들을 꼭 안아준다. 슬프고도 고통 중에 애타는
에바의 모성은 창조주의 그 죄의 길로 열심히 달려가고있는, 당신의 피조물들에 대한
창조주의 애타는 사랑의 한 조각을 닮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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