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고호의 자화상
미해병대 감시병 토미와 저격수 마이크는 특정한 한 인물의 암살 임무로 북아프리카의
어느 사막에 잠입하였다. 기다리던 인물이 한 무리들 속에 나타났는데 뜻밖에 그
무리들은 결혼식을 하기위해 곱게 단장한 신부가 나타나 시야를 가리는 바람에
마이크는 방아쇠를 당기는 것을 망설이다가 암살은 무산되고 임무는 실패인 채로
마을로 후퇴하던 중 사막 가운데 지뢰밭을 지나게되어 감시병인 토미가 먼저
지뢰를 밞아 두 다리를 잃었다. 피투성이의 그를 구하려 걸음을 떼던
마크도 지뢰를 밟고 그것이 터질까봐 다리를 떼지못한다. 정신을 차린 토미가
고통 중에 절규하다가 권총자살을 하고 마이크는 혼자 남았다.
한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면서 그는 본부에 구원을 요청하나 52 시간을 견뎌야했다.
갈증과 고통에 시달리던 그에게 자유인으로 불리는 원주민 하나가 바람처럼 나타나
걸음을 떼라고 수시로 조언하며 지뢰를 모아 팔아서 가족을 연명시키던 딸이
지뢰가 터져죽었다는데 그 어린 소녀가 물을 갖다주어 마시는 환영이 현실과 같다.
밤이면 추위와 괴성을 지르는 사막늑대들을 향하여 총을 쏘아대며 사투를 벌린다.
그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구혼을 하고 평화로왔는데 스스로가 극복하지못한 과거의
트라우마에 사로잡힌채 난폭하게 그녀를 떠나 군대에 조인하고 전쟁 속으로
뛰어들었었다. 어린 소년 시절 알콜중독에 가정폭력이 심한 아버지에게 늘 맞고
살던 엄마가 결국은 암으로 사망한 것에 대한 아픈 상처와 아버지에 대한 증오가
늘 가슴에 가득 차 자신은 제대로 살지못할 것이라는 자격지심을 극복치 못했다.
과거의 환영이 현실처럼 나타나 과거의 망령에 시달리던 그 시절에 무엇이
잘못되었고 그것에 대한 회한과 후회와 제니에 대한 그리움에 살고자하는
마음이 강해진다. 자유인은 다시 환영처럼 나타나 발을 떼고 다음 단계로 움직이라고
재촉하고 토미의 환영이 나타나 멀리 떨어진 신호탄을 빨리 줏어 쏘아올리라고
재촉한다. 구조단이 멀리서 그냥 지나가버리게되자 마이크는 다리를 떼어보는데
지뢰는 터지지않았다. 그는 놀라 그 자리를 파보자 손가락만한 병정상이
깡통 속에 들어있었다. 죽은 그 소녀가 지뢰를 판 자리에 묻어놓는 병정상이었다.
그는 신호탄을 줏어서 쏴 올리고 무사히 구조되어 공항에 마중 나온 제니에게
한쪽 무릎을 끓고 행복한 생활을 향해 첫걸음을 내딛었다.
어린 시절에 겪은 트라우마가 성인이 된 후에도 그 삶을 고통의 틀 속에서
벗어나지못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자유인이라 불리는 다리를 잃은 원주민이
계속 나타나 발걸음을 옮기라고 속삭이는 것이 현실세계에서 그 트라우마에
인질처럼 잡혀서 불행한 삶을 살지말고 한 걸은 건너뛰어 그 잠재된 어두운
세력에서 벗어나서 생명에 가득한 새 삶을 살라고 권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마이크는
발을 떼면 지뢰가 터져 죽고말것이라는 잘못된 확신에 발을 옮기지못하고
이틀 밤낮을 극심한 추위와 극한의 더위와 짐승들의 위협에 시달리다가,
구조대가 멀리서 지나가는 것을 보고 앞으로 아무래도 죽을 것이니
손이 닿지않는 곳에 떨어진 신호탄을 집기위해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발을 떼었는데 그것이 또 다른 삶의 시작이 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사람마다 가슴 속에 회환이 없을 수는 없다.
우리나라 민족 정서에는 한이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로 갖가지 사연들과
외세들의 침략이 많았던 환경들이 빗어내는 슬픔과 애절한 정서들이 있다.
그러나 한 걸음 한 걸음 그 상처들에게서 벗어나 자유와 새 생명을 얻는 것은
본인 스스로가 움직여야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그것을 외면하고 부인하며 많은 세월이나 힘을 낭비하고 소진해가는 사람들이 많다.
사막에 그 어린 소녀의 환영처럼 영적으로 생명의 스윗치를 켜주는 손길이 있어도
영화 속의 마이크처럼 절벽에 서야지만 스스로의 나약과 아픔의 진실을 깨닫고
앞으로의 미래는 자신이 그려가야하고 써나가야한다는 것을 알게되는 것 같다.
너무 늦기 전에,
혹자는 너무 늦는 법은 없다고 본인이 깨닫는 그 때가
본인에게 적당한 시간이라고 말을 하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