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진

도봉산에서

another woman 2006. 2. 6. 08:41

오전이 지나가는 무렵 산책을 나왔다가 도봉산행 버스를 보고 무작정 타고 근 삼십년 만에 도봉산에 오르게 되었다. 결혼하기 전 인수봉 바로 밑에서 폼(?)을 잡고 사진 찍은 것을

아이들이 눈여겨 보는 이유가 엄마가 이렇게 젊고 이쁠수가 있는지 의아해하는 까닭이다.

그때는 자주 거침없이 올라가던 곳을 지금은 한시간 반쯤 걸으니 도무지 걷기가 힘이든다.

중간중간 디카로 사진을 찍어가며 쉬어가는 촌스런 사람들은 우리 밖에 없는 것 같다.

빠르게 곁을 스쳐 산 위로 사라져가는 산을 타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바위에 걸터앉아 더 못갔다.

삼십년이 길다면 긴 세월인데 산은 그대로 있고 그 때 빠르게 산을 타던 나는 초로의 나이가 되어서 산 속에서 인수봉을 바라보며 서있다.

 생명을 지닌 것의 부질없음, 낭패감 같은 것이 순간 나를 감쌌다. 바싹 마른 나뭇잎들이 지천으로 깔려 산을 덮고 역시 바싹 말라보이는 나무들과 나뭇가지들. 그러나 우리들은 알고있다. 저 바싹 마르게 보이는 나무들 속에 숨어 살아 숨쉬고 있는 생장점들이 봄이 오면 터져나와 초록싹으로 움터서 푸르른 함성을 쏟아내며 여름이 닦아오리라는 것을. 자연은 등장할 때와 퇴장할 때를 본능적으로 자연의 섭리로 나타나는 창조주의 뜻을 말없이 순종하는 것이다.

 머리를 치켜들면 바로 인수봉이 바라보이는 지점에서 하산을 하였다.

물론 다음에 오면 그 젊음의 환희가 가득 차 있던 그 지점까지 갈 것이다.

어스름은 산 밑부터 차오르기 시작한다. 지금부터 사십년이 되어가기 전 빳빳하게 풀 먹인 흰카라를 단 교복을 입던 시절 눈이 가득 쌓인 도봉산에 와서 내려가는 길을 잃고

미끄러지며 눈과 나뭇잎들에 허리까지 빠져가기도하며 두려움 속에서 간신히

내려왔을 때 서로 나누던 안도감과 기쁨을 이고 버스를 탔던 그때 그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산은 변함이 없었다. 많은 책임감으로 부단하게 삼십대 사십대를 보내고

사는 일도 정리가 많이 되 의무를 벗어나 자신을 바라보며 시간과 물질도 투자할

여유가 있는 지금 왠지 해야하고  보살펴야할 그 많은 것들이 내어깨에 무겁게

달려있던 그 지난 시절에 대해 그리움이 생기는 것은 어쩐 일인지.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변함없이 항상 찾아오는 사람들을 품어주고

자신이 베풀 수 있는 온갖 것을 말 없이 베푸는 어버이와 같은 사랑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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