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생각

제목 없음 23

another woman 2006. 6. 27. 07:42

된장 찌개,콩나물 무침, 생선구이, 두부구이, 명란젓, 더덕무침이 어제 저녁상에

차려졌던 것이다. 아주 오랫만에 이것저것 하느라 어쩔 줄을 모르고

부엌에 붙어있었다. 그러나 양이 적은 딸은 얼마 먹지도 않고 배가 부르단다.

그 애를 먹이겠다고 부산했지만 결국 먹는 사람은 내가 되고말았다.

혼자 지낼 때 누군가 오면 음식을 해서 남은 것을 며칠을 먹고나면

아무 것도 없는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아이 먹을 것이 없네

난처해하다 커피나 타서 베란다로 나가 흙을 주무르기나 하고 지내다가

누가 오면 쇼핑하랴 만들랴 정신이 없다.

이상한 것이 오랫동안의 이민 생활을 하다보면 아무리 일을 못하는

여자라도 일에 익숙해진다. 나만 하더라도 하루종일 가게를 보다가

저녁에 퇴근하면 저녁 짓고 빨래하고 김치 담고 그리고 교회를 중심으로

사는 남편 덕분에 툭하면 교회 손님들을 접대하느라 성가대, 청년부, 제3 선교회니

몇십 명 씩 몰려오기가 예사였다. 국적불명의 음식들을 큰 접시 마다

가득히 담아 부페식으로 차리던 것도 잘하던 사람이

서울 생활  아니 혼자 좀 지내더니 아예 일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사람같이 되었다.

 

딸이 며칠 전에 올라왔다. 서울에 직장이 되어 사년 간의 포항 생활을 접고

서울로 오니 본인도 좋다고한다. 대학 졸업식도 하기 전에 한동대학에

자리를 얻었다고 바리바리 짐을 부치고도 어깨에 힘겹게 가방을 매고

배웅나온 친구들과 웃고 얘기하던 그애가 탑승구를 빠져나가는 뒷모습에

눈물이 나던 것이 벌써 오년 전이다. 한동에서의 세월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혔길래 이제 서울로 올 수 있었다고 그애는 포항을 잊지못할 것이라한다.

어린 나이에 자기보다 나이 많은 청년들을 가르치느라 옷도 얌전히 입어야하고 등등

서울만 오면 어깨를 드러내고 청기지 미니 스커트를 즐겨입어 내가 질색을 하면

 엄마 나 포항에서 숨도 못쉬고 지내 좀 봐줘요 하면서 애들 답게 들썩이던,

자기의 갈길을 잘 알아서 개척해가는 그 애가 고맙다.

 

성격상 혼자도 잘 지내지만 딸이 오니 일이 많아지고 사람 사는 맛이 난다.

집도 넓다는 느낌이 없어지고 공간이 채워지니 깨닫지 못하고 나를 감싸고있던

허전함도 사라졌다. 의무적으로 해야하는 일이 사람을 지탱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사람이란 이래서 가족과 친구가 필요하고 어느 소속이 필요한 모양이다.

자기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일하는 것도 결국은 자기 자신을 위한 셈이 되는 것같다.

캠프에서 만난 상담자들이 말한다.  남의 괴로운 점을 상담하다보니

자신의 문제를 위로 받고 치유되었다는 말을 하는 것이 귀담아 들린다.

한세상 살아간다는 것은 너도 나도 다 쉬운일은 아닌 모양이다.

상담자들도 나름대로 문제가 있지만 남을 위해 마음을 열고 일하면

겉으로 보면 내가 남에게 꼭 무엇을 주는 것만 같은데 실상은 더 귀하고

좋은 것으로 뭔가를 돌려받게 되는 것을 보면 그 일 가운데 계시는

그 분을 알게 되고 그 분이 하시는 일의 방식은 인간들이 알수도 없고

생각이 미치지도 않는 은혜에 가득 차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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