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 예단을 보낸지 며칠 된다. 두 아이들이 예단을 싣고 가는 것을 보며
한가지 큰 일을 했구나 하며 안도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일생에 한번 있는 일이니 남에게 빠지지않게 하라는 충고들을 새겨들으며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예단을 보내고 돌아온 나에게 남편은 우리 아들 장가 들일 때는
이런 것 받지말자 한다.
서울에 살면서 느낀 것중 두가지 큰 일은 아이들 교육문제와 혼인문제가
너무 과하다는 것이다. 한국 부모들의 자식 사랑과 책임감은
세계에서 일등을 할 정도로 열성이 넘친다.
등허리가 휘도록 자식을 섬기는 것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난다.
호주에서 태어난 조카의 결혼식은 참으로 산뜻했다.
금반지 하나씩 주고받고 그동안 자기들이 모은 돈으로 결혼식을 준비했다.
조카는 천을 떠서 웨딩드레스로 입고 나중에 파티에 참석할 수 있는
모양으로 드레스를 맞추고 웨딩 후 꼭 청하고 싶은 하객이 참석하여 스피치를 하고
삼페인을 터뜨리며 춤을 추며 그 결혼식을 진심으로 축하하였다.
그동안 융자를 얻어 작은 아파트를 샀다가 이번에 시어머님이 세상을 뜨시면서
받은 유산으로 뜰이 있는 주택으로 옮기었다.
충분히 도울 여력이 있지만 우선 본인들의 힘으로 시작하는 것을
자식들과 부모들이 당연히 여기는 사회의 눈으로 보면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일부의 결혼식은 석연치않은 마음이 든다.
식장에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리봉이 달린 줄줄이 늘어선 꽃행렬로 시작하여
몇백명이나 되는 하객들이 시장처럼 북적인다.
무엇보다도 금액이 만만찮은 예단비가 갔다가 왔다가하는 것이 납득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듯이 서울이니 서울법을 따르라는 친구의
따끔한 충고를 따라서 서울식으로 하고나니 마음은 홀가분하다.
아직 한참 교육 시켜야하는 자녀들을 둔 집을 보면 그래도 잘 감당하는구나
할만큼 사교육비와 한참 뛰놀고 자라야하는 나이에도
수없이 학원들과 집만을 오가며 무엇인가 끊없이 익혀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아야하는 아이들을 보면 연민을 느낀다.
요즘은 지하철의 풍속인 것 같은데 나이 든 사람들이 서있어도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들이 드물다. 처음에는 그것이 안좋게 보였는데
서울 생활을 이해하고나니 그 젊은이들이 충분히 이해된다.
지나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아야하는 그들, 많은 교육을 받고
자질을 익혔으나 퇴근 시간은 없고 야박한 봉급에 시달려야하는
요즈음 젊은이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지하철역에서 모자를 푹 눌러쓰고 고개를 숙이고 종이컵 같은 것을
앞에 놓고있는 젊은이들이 눈에 뜨이면 일어나 걸어라 내가 힘을 주리라하는
복음 송이 생각이 난다.
침대 위의 두 개의 파란 보따리와 침대 밑의 이불 보따리가 예단으로 간 것들이다.
예단을 정성껏 싸준 주인은 예단 나가기 전 예비 신부와 신랑에게 예단 가는 범절을 가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