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서울에 없었기 때문에 이주가 넘어 그녀를 방문하게 되었다.
병실을 들어선 순간 속으로 놀랐다. 그녀는 머리를 삭발하고 마치 일엽스님과 같은
모습으로 누워있는데 나를 보자 오래간만이니 반가운 기색은 있는데 눈빛이 평소와는 다르다.
가기 전에 팀장님께 들은 이야기도 있고 우선은 살펴볼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죽음을 앞두고 병상에 누워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열심을 내는 것을
대예배 시간에 설교 중에 있은 이후 헬라어성경에 통달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중년남자가 그녀의 병실에 드나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이후 그녀는 점차 눈빛이 사나워지고 공격적이 되고 변하였다고한다.
우리는 서로 아무 일 없는듯 안부를 묻고 나는 그녀의 모습에 연민에 앞서 오는
당황감을 감추려고했다. 배타고 오는 얘기나 그 곳에서 있었던 일, 집에 와서
식탁 차리는 일을 오래 안하다가 식탁 위에 이것 저것 늘어놓기위해
김치를 꺼내는데 그일이 너무 대단히 여겨져 한순간이나 울고싶었다고 등등.
그동안 팀장님은 간병인과 복도에 나갔다가 오시더니 작은 소리로 한 닷새
그남자가 오지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들이 갈 때즘 그녀는 다시
평소의 그녀로 돌아간듯 보였다.
방사선 치료를 내 거부하던 그녀는 병원이 숫가가 안올라가면 내보내기 때문에
그리고 살아보고자하는 의지가 다시 솟아났는지 방사선 치료를 동의하고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물론 치료는 안되면서 몸은 이세상의 온갖 괴로움을 혼자 짊어진듯 고통만이 남았다.
그녀는 예상한 것처럼 상태만 나빠지고나서 그 치료를 그만 두었다.
머리가 다 빠지고 암세포가 그득히 자라올라오고 있는
입안에서는 고름과 피를 계속 �어내고있다. 방사선 치료 전에는 냉면을 한그릇 다먹고
즐거워하던 그녀는 아무 것도 먹지못하고 분비물만 �어내고 있다.
그녀의 모습에 연민에 앞서 두려움을 느끼는 자신에 대해 일말의 가책을 느낄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생사여부는 창조주의 섭리 아래 있다고한다.
지금 우리들의 상태가 절망적이고 괴롭고 원망스럽기 짝이 없어도
그분은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육신의 그 고통 속에서 절규가 나와도 기쁨은 나올수가 없는데 기뻐하라고 명령하신다.
그 처참한 상태에서도 기뻐하는 마음은 아니라도 마음을 붙잡고 즐거움이라도 느끼려고
자꾸 연습하다보면 마음에 평강이 찾아오고 이어서 세상이 절대 줄수없는 신령한 기쁨이
생겨나지않을까. 그녀의 창밖에는 초여름의 더위에 더욱 초록을 짙게 만들어내는 나무들이
가지들을 울창히 드리우고있고 햇볕이 아름답다.
고통 때문에 그런 것이 눈에 들어오지않지만 그래도 그런 초록과 햇살을 감사하도록
마음을 굳게 먹고 연습하다보면 평강을 느끼고 기쁨이 속에서부터 샘물처럼 솟아나지않을까.
자신은 못하면서도 남의 상태에 대해 많은 처방전을 생각해내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길은 거기에만 있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하여 그들이 결코 할수없음을 아시고 하라고
생명의 길로 안내하시기위해 안타까이 명령하고계심을.
죽음 앞에서면 두려울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들이 태어나기 이전의 시간이나
한세상 고단하게 살았던 이세상의 시간이나 죽음 이후의 시간이나 영원한 현재라는
것을 믿는다면 죽음 이후의 신령한 기쁨의 세계가 오히려 복되지않을까 생각이 든다.
돌아오는 시간에 서로 다음 한주 간의 평안을 빌때 그녀는 평소의 얼굴과 눈빛으로 돌아왔다.
인자하고 평강이 있는 그 얼굴은 처음 병실에 들어와 본 그녀의 얼굴과 너무 다르다.
몸 안에 든 영혼의 상태에 따라 저렇게 다른 사람처럼 여겨지는 얼굴이 되는 것을 보고
우리들의 육신을 지배하는 것은 영혼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만이 바르게 믿는 다면서 환자들을 찾아다니며 절대적인 평강이 필요한 그들의
영혼을 노략질하는 이리의 정체를 그녀가 겪어내는 변화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그냥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오는 오후의 외출 (0) | 2007.07.22 |
---|---|
기억에 남는 두 사람 (0) | 2007.07.09 |
옹색한 변명 (0) | 2007.06.28 |
오후의 단상 (0) | 2007.06.17 |
그녀에 대한 회상 (0) | 2007.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