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생각

미친 사랑

another woman 2009. 2. 10. 20:30

 이민 생활을 할때 간혹 토요일 오후에 비디오 가게에서 티비 문학관이나

베스트 셀러극장, 드라마 시티 같은 단막극들을 빌려보곤 했었다.

시리즈는 보고 또 보고 하는 것이 부담이 되어 주로 단막극을 보았다.

서울에 온 후 처음 드라마 시티를 보게 되었는데 제목이 미친 사랑이다.

 

선우용녀가 딸아이의 결혼식을 마치면 남편과 이혼을 할 결심이었다.

평생 남편으로부터 여편네 타령을 들으며 무시당해왔다고 생각하고

나이가 드니 그것이 가슴에 사무쳐 무슨 일이 있어도 더 이상 함께 살수

없다고 다짐을 한다. 시동생, 시누이들이 많아 다 뒷바라지하여 분가시키며

한평생 어렵게 살았지만 늘 남편에게는 하대를 당했다는 분노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교통사고를 당해 뇌를 다쳐 입원을 하였다.

보험회사 직원이 찾아와 사망을 하였으면 십이억의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다쳐서 그렇게는 안된다는 소리를 들었다. 모친 장례 후 돈 육백만원

들어온 것을 동생들의 불만을, 그동안 너희들 때문에 희생한 것이 얼만데

이 정도도 안되냐고 다투어가며 가져간 그 돈을 일년치 보험금으로 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두 모녀는 남편의 의도에 서로 놀랐었다. 남편은 다행히 의식은

찾았으나 다친 뇌 때문에 가족들을 몰라보고 폭언과 억지로 소리를 치며

늘 병실에서 난동을 부렸다. 병문안 온 사돈댁이 놀라 결혼도 연기 시키고

선우용녀는 남편을 꼭 낫게하여 자신의 분노의 이유를 알리고 그를 떠나리라

결심하여 최선을 다하던 어느 날 남편이 의식을 되찾는다.

 

아내를 알아보는 그는 자신이 한 행동이 허사가 되었음을 알고 아내를 처음 만나

사랑을 하던 일을 선우용녀에게 떠올리게 한다. 아내도 남편이 사업에 망하고

보험을 들어 자신이 죽은 후 아내와 딸이 보험금을 탈 수 있게하고 사고를 내었는데

뇌만 다치고 실패한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는 아내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소지품

전부를 침대에 가지런히 늘어놓고 병원을 빠져나가 사라졌다.

 

장면은 바뀌어 딸이 결혼하여 손자가 생기고 남편 실종이 칠년이 지나 보험회사로

부터 보험금이 지급되게 되었다. 그러나 선우용녀는 그 돈을 받지 못할 것 같고

그 원하던 태국으로의 여행도 하지못할 것 같다며 드라마는 끝났다.

 

작가가 미친 사랑으로 표현한 주인공 남편의 사랑은,  정작 아내는 평생 만만한

취급을 당하고 무시 당하였다는 원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만나 사랑을

느꼈던 그 감정을 하나도 잃지않고 간직하고 있었다. 장남으로서 집안을 꾸려야하는

삶의 고전분투 속에 비록 가리워져있었고 늘 아내의 희생이 요구되는 것을

방관했지만  남편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살아있는 사랑은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자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남편의 사랑을 깨달은 아내는

마음의 위로를 얻었지만  실종된 그의 존재는 여전히 아내인 선우용녀를

괴롭히는 것을 남편이 알까 모르겠다. 대부분의 아내들이 원하는 것은 어렵게

살더라도 가끔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아주고 가끔 따뜻한 말을 건네주고

부드럽게 웃어주며 옆에 있어주는 것이라는 것을. 그 남편은 아내가 무시

당하고 있다고 느낄 때나 그의 실종 때나 아내를 괴롭히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까.

 

요즈음 심한 불경기로, 가정파탄이 많고 가장이 집을 나가  실종 신고가 되고

어느 기간이 지나면 주민등록증이 말소된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 시민이면서도

자신을 증명할 종이 하나 가지지못한 노숙자들도 꽤 된다고 한다.

어느 별에서 떨어져나온 작은 한 돌조각이 하늘을 돌아다니듯 정처없이 몸이나

마음을 누일곳 없는 노숙자가 이 밤에도 어느 거리를 떠돌다가 전철역 구석에

바람을 막아보려고 상자를 세워놓고  쪼그리고 앉아 밤새 누웠다 앉았다 시간이

멈춘것 처럼 더디가는 밤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며 시간을 세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의 이름으로 보험을 들어놓고 보험금을 타내기위해 상대를 살해하는

일도 번번히 뉴스에 오르는 삭막한 요즘 세상에 아내에 대한 사랑을 자신을

마지막으로 내던지는 그런 식으로라도, 그 사랑은 미친 사랑이라고 표현되었지만

마음의 어느 부분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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