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테르쿠알 두아르케 가족은 198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스페인 작가
카밀로 호세 셀라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42년에 출간되었다. 1936년 시작되어
1939년에 끝이 난 스페인 내전과 연이은 세계 제2차 대전으로 당시의 스페인은
사회, 문화나 경제적으로 심한 어려움을 겪는 시기였다. 군대의 검열로 문학작품도
가난한 시기 였지만 카밀로의 이 작품으로 스페인의 문학성을 일깨우기 시작했다.
내용은 시종일관 폭력과 역겹고 반역이스런, 인간성에 어느 많은 부분에 숨어있는
야수와 같은 잔인성으로 일관되어 살인을 거듭한다. 그러는 사이사이 뼈저린 회개를
하면서 환경에 탓을 하는 주인공의 간절한 자기 갈등이 그 당시의 사회상을 읽을 수
있었다. 같은 민족이지만 서로를 살상하고 도시들을 파괴하며 그 과정에서 불타오르는
증오감으로 자신들의 성품을 파괴해나가 인간성이 야수처럼 비정상적으로 된 것을
이해하고 용납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분노를 살인으로 몰고가는 주인공의 그 야수성은
엎드려있다가 먹이가 될만한 짐승에 달려들어 먹이를 갈갈이 물어찢는 짐승과 닮아있는
것을 보면 타고나는 어떤 종류의 사악함을 부인할 수가 없다.
주인공은 막 난산을 마친 아내를 혁대로 때리는 술군 아버지와 자식들을 사랑하지않는
무지막지한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늘 그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방관자의 입장에서
자라갔다. 그의 가슴에 든 선한 기질은 개발되지 못하고 상실되고 파괴적인 사악함이
발휘가 되도록 사회가 그를 떼다민 요소도 있어보인다. 성인이 된후 술취한 중에 친구를
상해하는 것을 시작으로 자신의 부재 중에 정부를 사귄 아내를 살해하고 마을의 지주였던
리바 백작을 살해하고 마지막으로는 어머니를 해한다. 그는 변명한다. 삶이 자신에게
가르쳐준 것은 너무도 악했고 그런 본능에 저항하기에 자신이 너무도 연약하다고.
그는 자신을 파괴적으로 만든 환경을 탓을 한다. 그러나 그의 핏줄 속에는 어둡고 사악한
유전적인 소질이 있었고, 불행하게도 어둠으로 인도하는 듯한 부모와 사회를 만나
그 유전적인 사악함이 터져나온 면도 있다.
제목이 파스쿠알 두라르테의 가족이라고 다수를 칭한 것도 그가 어두운 핏줄을 가진 그
가족에게서 자라나고 파괴와 가난에 찬 사회에서 그 가족이 향할 수 밖에 없었던 어떤
정점을 그가 행한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감옥에서 그가 자기의 일생을 회한에 넘쳐서
돌아보면서 사형 당하기 전까지 그 일생을 소설의 형식을 빌어서 기록하였다. 그의 절절한
참회도 진실이고 또 그가 모범수로 석방되자 어떤 이유에선지 다시 저지른 살인도
진정한 그의 모습이었다. 다시 감옥에서 사형 받을 그 날까지 소설을 쓰는 것을 도와주면서
그의 영혼이 온당한 회개를 하도록 감화를 책임진 사제는 파스쿠알이 인생에 놀라
궁지에 몰린 온순한 양이라고 편지에 썼다. 그러나 처음에는 사형대 앞으로 가면서 주님을
찬양하던 그가 막상 죽는 순간에는 온갖 발작을 일으키며 누구보다 처참한 모습으로
죽었다고 한다.
유전적으로 범죄형이더라도 그가 사는 가정과 사회의 어떤 규범과 사랑으로 순화된 선한
영혼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런 류 범죄로 사형을 당할 수 밖에
없었던 화자로부터 유전적인 인간성과 사회, 환경에 대한 관계성을 볼 수 있다.
요즈음 존속살인에 대한 뉴스가 자주 실린다.
아침에 인터넷 노컷 뉴스에서 읽은 것을 요약한다.
아침에 학교에 등교해야 함에도 새벽 2, 3시가 되도록 게임에 몰두하는 초등학생이
많다고 한다. 그 게임의 대부분은 이용 등급이 제한된 총기류의 게임이 많다고한다.
게임 속의 살상의 폭력이 현실로 이어지기 쉬운 것은 온 라인 게임 속에서
자신의 모습이나 경험과 생각을 혼동하게 된다. 자신의 친구들의 신체 상해나
살상에 쾌감을 느끼거나 즐겁고 게임을 지나치게 한다고 꾸중하는 어머니는
게임 속 적군으로 여겨 살해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고 한다.
서울 지역 7개 초등하교 4-6학년 1361 어린이의 인터넷 게임 생활 실태를
조사한 결과 46%의 565명의 어린이들이 이용등급이 제한된 총기류 살상게임을
즐기고 그 중 21%의 263명의 어린이가 그런 폭력에 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파스쿠알이 살던 시대에는 가난과 전쟁으로 파괴된 사회 환경이었지만,
요즈음은 물질과 문명이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게 발달하고 풍부한 세대이다.
내용은 다르지만 비슷한 양상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결코 물질의 풍부와
정신의 빈곤한 사회 현상은 결코 선한 어린이가 자라나기에 좋은 환경은
아닌듯 하다. 어른들도 남과 만나 차 한잔과 많은 대화로 교제한다기 보다
익명으로 인터넷 안에서 가족들과 함께가 아닌 혼자서 하루의 많은 시간을
보내는 세대, 맞벌이 부모를 둔 어린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옛날 처럼 대가족
시대에 할머니, 할아버지를 존중하며 규범과 교훈을 배울 수 없는 세대이다.
요즘의 며느리들은 영어 철자가 복잡한 아파트로 이사가 시어머니가 찾아올
수 없게 한다는 우스개도 생기고 사회구조 적으로도 핵가족이 될 수 밖에 없다.
우리들의 미래를 넘겨주어야할 아이들의 바른 인간성과 인격과 정서적인
기본 감정도 학습하고 훈련해야할 중요한 부분이다. 부모들은 비싼 사교육비나
자녀들의 뒷바라지에 허리가 휘지만 그것은 외형적인 구조이지 실상 그 아이를
평생 꿋꿋하게 지켜낼 인격과 인간성과 정서를 외면하고 오직 공부를 잘
하기만을 아이에게 강요한다. 이는 아이를 벌판에 내몰고 아이의 심령에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도 어느 사건이 터질 때까지는 무신경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이해하고 바른 길로 가도록 자신을 사랑한다.
그러나 운도 나쁘게 사회적, 환경적, 유전적으로 나쁜 면 만을 품에 안게되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온라인 상의 난폭한 게임들의 환상이 현실로 혼동하는 것이
굳어지기 전에 이들이 자신과 사회를 불행하게 할 요인들을 어른들은 심각하게
온라인 게임 등의, 사회적으로 사악한 점을 고려하고 시정할 시점인 것 같다.